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본다 | 정동 실재론

 

우리는 뇌가 믿는 것을 본다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본다


- 우리의 뇌는 고집불통의 과학자를 닮았다. 즉 예측은 즐겨 하면서도, 입력되는 증거에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때때로 신체 예산을 관리하는 부위는, 매우 굼뜨게 예측을 수정한다. 

최근 속이 거북할 정도로 너무 많이 먹었던 적이 있다면, 우리 뇌의 신체 예산을 관리하는 부위를 탓해야 한다. 신체 관리 부위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체내를 순환하는 포도당의 수준을 예측하는 것인데, 이 수준에 따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있는지 결정된다. 

그런데 이 부위가 신체로부터 "이제 배불러" 라는 메세지를 제때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먹게 된다. 



 "한 그릇을 비우기 전에 정말 아직도 배고픈지 확인하기 위해 20분을 기다려라" 

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면, 이제 그 말뜻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의 신체 예산에 대규모의 예금이나 인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뇌는 이것을 따라잡기까지 조금 기다릴 필요가 있다. 



- 마라톤 선수들은 이 원리를 잘 안다. 그래서 레이스 초기에 신체 예산이 아직 바닥나지 않았어도 일찌감치 피로를 느끼게 된다. 그래도 계속 달리다 보면,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마라 토너 들은 에너지가 바닥났다고 주장하는 정동 실재론을 무시하는 셈이다. 

신체로부터 받는 느낌이 신체의 실제 상태를 언제나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가슴에서 심장이 뛰는 느낌, 허파에 공기가 차는 느낌 같은 낯익은 감각과 전반적인 쾌감, 불쾌감, 동요, 평온 같은 느낌은 실제로우리의 신체 안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우리의 내수용 신경망에서 이뤄지는 시뮬레이션의 결과다. 



정동 실재론이란?


- 우리는 내 뇌가 믿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정동은 기본적으로 예측에서 비롯된다. 정동 실재론이란, '우리의 뇌가 믿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대다수 느낌도 같은 이치다. 

손목에서 맥박이 뛰는 느낌도 뇌의 감각 부위에서 구성되고 감각 입력(실제 맥박)을 통해 수정되는 시뮬레이션이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우리의 지식과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수행된 옝측에 기초한다. 우리는 실제 우리 경험의 설계자다. 믿는 것이 곧 느끼는 것이다. 



정동(Affect) 실재론의 사례



- 신경 학자인 헬렌메이버그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한 심층 뇌 자극 요법을 개발했다. 이런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인한 괴로움을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혐오와 끝없는 고문의 함정에 빠져 몹시 괴로워하며, 일부는 거의 움직이지도 못한다. 

수술 과정 중에 신경외과 의사 팀에서는, 환자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몇 개 뚫어 내수용 신경망의 핵심 예측 영역으로 전극을 내려 보낸다. 그 다음 신경외과 의사가 전극을 켜면, 환자는 심한 고통의 즉각적인 경감을 보고한다. 전원을 켜고 끌 때마다 환자가 경험하는 극심한 공포의 파동은, 자극 부여와 동일한 박자로 등락을 거듭한다. 

메이버그의 이 연구는, 인간의 뇌를 직접 자극해서 정동적 느낌을 일관되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이고, 정신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뇌의 예측 회로는 정동에 중요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느낌에 따라 보고 듣는 것이 바뀐다 



- 어떤 선택을 하기 전 장단점을 따져보는 합리적 동물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뇌의 피질 구조 상 이것은 허구일 뿐이다. 뇌는 신체 예산에 귀를 기울이도록 배선 되어 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은 정동이고, 합리성은 승객이다. 

 일상적인 결정은, 정동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끄럽고 고집불통인 과학자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통해 감정을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체 예산 상태가 모든 사고와 지각의 기초이고, 내수용과 정동이 우리의 매순간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 존재로 경험할지 모르지만,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우리의 신체 예산과 이것에 연결된 정동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가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믿음이 계속되는 이유



- 동물의 왕국에서 우리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합리성이라는 오랜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원 신화는 인간의 마음이 행동 통제를 둘러싼 인지와 감정의 전쟁터라는 설화와 맞닿아 있다. 이것은 서양의 사고 전통 속에 가장 소중히 간직된 설화 중 하나다. 

  흔히 둔감한 사람 또는 순간 발끈해서 어리석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무분별thoughtless'하다고 말한다. 이런 표현에도 인지적 통제력의 결여, 우리 내면의 냉정한 심판관과의 연결이 끊겼다는 식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이 기원 신화는 매우 강력한 것이라서, 과학자들도 여기에 기초한 뇌 모형을 제안하고는 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우리가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아주 오래된 피질하 회로는 우리의 기본 생존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 회로 꼭대기에는 우리가 초기 포유류로 부터 물려받은 '변연계'라고 불리는 감정 체계가 있다. 그리고 마치 굽기가 완료된 케이크에 크림을 얹듯이, 이 변연계에 합리적이고 인간에게 독특한 피질이 덧씌워 있다고 얘기한다. 


'삼위일체 뇌'


라고도 불리는 이 가공의 중층 배치는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 대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오해 중 하나다. 그러나 인간은 인지라는 예쁜 포장지로 둘러싼 동물 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것은 뇌의 진화를 이해하는 전문가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뇌는 회사가 크듯이, 팽창과 동시에 재조직됨으로써 효율성과 날렵함을 유지한다. 


즉, 인간 뇌의 해부학 적 구조 상 내수용과 정동 으로 부터 자유로운 결정이나 행동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합리적인 존재로 생각하든지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신체적 느낌이 계속 전파되어 장차 우리가 느끼고 행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뇌의 구조물 안에서 섬세한 상호 조율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실현하는 예언과도 같다.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본다 | 정동 실재론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본다 | 정동 실재론 Reviewed by 해결사 on 2월 26, 2022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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