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습관을 바꾼다(부정적인 생각 없애기)

 

부정적인 생각 없애기 


나를 망치는 가장 강력한 적 - 부정적인 생각


- 어떤 문제를 겪든, 끝내 스스로에 대한 비난으로 결론을 맺는 사람들이 있다.  이상하게도,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이인데, 제일 가혹하게 대하는 관계가 바로 나 자신과 맺는 관계인 거 같다. 우리는 자신을 비난하는 데 매우 익숙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남들이 안 좋게 생각할까 봐 불안해하다가 어느 순간 남들의 눈치를 너무 보는 내가 싫어지는 게 평범한 우리들의 못된 심보다. 나에 대해서만큼은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 온통 불만투성이다. 


내가 나를 심판하는 
'판사'가 될 때 일어나는 일 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우리는 스스로를 판단한다. '잘했어', '수고했어' 같은 긍정적인 판단보다는 '왜 그랬지?', '너무 바보같아' 처럼 깎아내리는 판단이 대부분이다. 의식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 버리는 내 마음, 스스로를 안 좋게 느끼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모든 생명체에는 근본적인 불안감이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근데 이 불안에 대응하는 인간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과거를 잘 기억하고, 미래를 철저히 대비한다. 그래서 앞으로 비슷한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계획을 세운다. 

 

인과관계를 세우는 인간의 능력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위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강박적 사고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인간은 늘 '지금 이 상태는 뭔가 불완전 하다'라고 느낀다. 그래서 원인과 대책을 찾는다

 


- '뭔가를 더 해야만 해', '그걸 못 하면 난 잘못될 수도 있어'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결국 현재의 내 모습은 완전하지 않은, 늘 부족한 상태로 남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직접적인 이유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매사 볼썽사납고 사랑받을 자격 없는 나만 남는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부족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요즘은 언제나 자신이 문제없는 괜찮은 사람임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는 풍토가 강하다. 원만한 성격과 쓸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임을 보여 줘야,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결국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런 불안감이 스스로를 더욱 다그치게 만든다. 

 

문제는 노력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나에 대한 만족감이 아닌, 상시적인 불안과 두려움이다. 더 훌륭한 내가 되는 것이 나와 잘 지내는 길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들은 적은 많아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의심이 들게 된다. 나에게 관대해지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질 거라고 걱정하게 된다. '그대로의 나에겐 문제가 많다'는 관념이 워낙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문제 많은 나를 어떻게든 고쳐 보려는 노력이 훨씬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한 가지 이득이 있다. 무슨 일이든 그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리면, 그 일이 자기 통제하에 있다고 느낌으로써 불안감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 비난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통제 불능의 상황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잘못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이런 자책과 자기 비난은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먹는 것조차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다니, 나는 너무 무능력해.', '나는 살 가치가 없어', '아예 사라져 버릴까?' 이런 식으로 자기 비난이 우울증으로, 심지어 자살충동 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내 탓을 멈추는 순간,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 


다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두려움과 수치심이 사라진다. 그때부터 열린 마음과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자책의 연쇄 고리를 끊고, 해법을 찾아 실행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나를 심판하는 사람에서 
나를 돌보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사회적 동물로서 갖는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어떤 문제에 처했을 때, 내가 나에게 내리는 가혹한 판단이 문제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게 된다.

 이것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더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이고, 둘째는 자책과 우울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누구보다 성실한 자신을 끝내, 미워하고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길을 가다 넘어진 어린아이를 봐도 "아이고, 많이 아프니?" 하고 묻는 게 자연스러운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자신에게는 "왜 돌을 못 봤어? 정신을 어디가 두고 있는 거야?" 하고 혼을 내는 것과 같다. 

 

인생에 돌부리가 아예 없으면 좋겠지만, 그걸 못 보고 넘어졌다고 해서 나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돌부리에 걸렸는데 안 넘어지는 게 더 이상한거다. 그러니 이제 자기 비난의 쳇바퀴에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넘어진 아이처럼 대해야 한다. 나를 심판하는 판사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넘어지면 "아프겠다, 괜찮아?" 하고 말하라.

 

그대로의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 나를 자꾸만 문제아로 만드는 나 자신이 진짜 문제다. 


부모 탓하기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짓

 

남 탓하기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부모 탓하기'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혹은 부모님이 나를 너무 통제해서 온갖 나쁜 버릇에 시달리게 되었으므로, 이 사태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남을 탓할 때 분노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튀어 오른다. 마음속으로 상대를 나쁜 가해자로, 자신을 힘없는 희생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폭언, 폭행처럼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상대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만 해서 속을 긁는 수동적인 공격성으로 표현한다. 지시한 일을 잊어버린 척 일부러 하지 않거나, 망친 후에 왜 그랬냐고 다그치면 "나는 원래 그런 일에 서툴러요"하고 대꾸하는 식이다. 

 

 다른 사람을 탓하고, 그에게 분노를 표출하면

 

- 그 당시에는 속이 후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뿐이다. 화살의 책임을 특정한 누군가에게 돌리는 이상, 분노의 불길은 끝내 사그라들지 않는다. 인생의 돌부리가 나타날 때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당신 때문이야"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더욱 나쁜 점은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기 전까지 내가 겪는 나쁜 습관과 고통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물론 그가 내 뜻대로 진심을 다해서 잘못을 뉘우치면 좋겠지만,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그걸 기다리는 동안 정말로 희생당하는건 현재의 소중한 나의 삶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탓하는 그 사람도 희생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나를 아프게 한 그 역시 어떤 면에서 상처 받은 사람일 뿐이다. 책임 전가에는 끝이 없다. 현재 겪고 있는 심리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한다면, 남을 탓하는 행동도 멈춰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탓하는 
진짜 이유는?

 

마음에들지 않는 내 행동, 습관, 기분을 정당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볼 때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남 탓하기를 통해 해소하고 싶은 것이다. 굳이 남 탓을 할게 아니라, 나를 자꾸만 못나고 부족하게 보는 차가운 그 시선을 고치면 된다.

 

어렵게 느껴지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온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 다른 사람을 탓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허무한 시도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나를 깎아내리는 부정적인 생각 습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두려움을 느낀다. 더 이상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나의 부족함, 게으름, 나태함을 그냥 승인하고 묵과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버려 두는 것(승인)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수용)은 다르다. 수용은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변화를 꾀하기 위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을 마냥 바라봐야만 하는 승인과는 다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도 비슷하다. 아이를 잘 기르는 부모는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부모가 아니다. 

 

 온정 어린 마음으로, 아이에게 공감하되, 아이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비춰 주는 부모다. 내가 나를 대할 때도, 좋은 부모가 아이를 대하듯 해야 한다.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가 처한 현실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안타까운 일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나와 타인과 세상을 탓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그 에너지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내가 나에게 관대해진다. 타인도 따뜻하게 대할 수 있게 된다.

 

성취나 관계 면에서, 세상살이가 훨씬 부드러워 진다. 그러고 보면, 후회 없는 인생이 먼 미래에 있는 꿈이 아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닦달하고 다그치면서 앞으로만 달려갈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방법


-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기보다는, 끊임없이 평가하고, 부족함을 자책하는 데 익숙하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늘 재난 상황에 대비하고, 발 빠르게 대처해야 했는데, 그런 습성이 지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습성으로 인해 자꾸만 자신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를 해야 한다' 또는 '~를 하지 말아야 한다'식의 강박적 사고를 갖게 됐다. 

 

하지만 자기를 자꾸 고치고, 보완하려 애쓰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다. 자기 평가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바라봐야 한다. 자기 탓을 멈추는 순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 부모님 등의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주었음을 알게 되고, 진짜 문제의 원인을 다각도로 살필 수 있게 된다. 

 

열린 마음일 때 진짜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내가 나를 대할 때는 좋은 부모가 어린 자식을 다루듯이 대해야 한다. 나 자신을 엄격한 판사의 눈이 아닌, 어린아이를 대하는 따뜻하고 바른 부모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람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다룰 때, 비로소 안정을 되찾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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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습관을 바꾼다(부정적인 생각 없애기) 생각이 습관을 바꾼다(부정적인 생각 없애기) Reviewed by 해결사 on 1월 11, 2022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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